동창회보 > 동문탐방
글번호
101293
일 자
07.07.23 00:00:00
조회수
1878
글쓴이
총동창회
제목 : 김선흥 주중국청도총영사(인문대·76)를 찾아서
- 총동창회 최희동 사무총장은 7월 2일 중국 청도를 방문하여 청도한국총영사로 재임하고 있는 김선흥동문을 찾아 자랑스러운 동문패를 전달하였다. 김동문은 72년 전남대학교를 수석 합격하였고, 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27년째 직업외교관으로 국가발전에 헌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 청도의 상징 노산의 수려한 산세를 뒤로 하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임산배수의 좋은 길지에 자리한 주 청도한국총영사관은 지상 5층의 현대식 건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짐작케 하였다. 모교에서 온 후배들을 반갑고 따뜻하게 맞이한 김선흥 총영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교와 고향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1. 대학 진학과 학창시절 기억나는 점은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시험을 치렀지만 전대 입학시험이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2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학교성적도 나빠지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는 이미 늦어 첫 해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했었습니다. 재수를 하면서 전남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는데 꼭 떨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발표 당일 아침까지 걱정을 했었는데 뜻밖에 수석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인데 우리 대학의 특성도 그러했지만 특히 저의 대학생활도 유신정권과의 투쟁이었습니다. 민주화가 되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지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래서 충동과 직관에 의해 행동하게 되었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2. 지방대학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외무고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서강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평론가가 되기 위해 영어와 독일어, 불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대학원 졸업 후 군 입대를 논산으로 했는데 척추분열증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지요. 1년 후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 할 일 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화순 유마사에 들어가 소일하다가 우연히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외무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첫 해 1차에 합격하고 그 다음해 화순군청에서 방위생활하면서 2차에 합격해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외무고시도 독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 나왔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3. 청도총영사관의 업무에 대해서? - 우리 총영사관은 산동 성의 유일한 외교기관입니다. 산동 성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고 고대부터 많은 교류를 했던 곳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영사관은나라를 대표하여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자국민을 보호하고 권익을 신장시키며, 문화와 통상교류, 우호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일을 합니다. 참고로 비자발급 건수가 우리나라 외교기관 중에서 세 번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항공편을 개방해서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지방정부와 논의 중이고, 청도의 자랑인 노산과 영암 월출산과의 자매결연 추진, 산악인들의 교류, 문화예술행사의 공동개최를 청도시와 협의 중입니다. 4. 외교관으로 외국생활을 많이 하셨으니 국제화시대에 대비하여 우리 대학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첫째는 우리의 장점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무조건적으로 따라 가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배타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중국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포용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빼는 문화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배척합니다. 더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상대와의 경쟁에서 불안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고 즐겨야 합니다. 그러면서 노력해야겠지요. 5. 동문들이나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이야기는? - 세계화 속에서 자기의 개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역성을 유지하면서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복분자술이 파리의 와인시장에 진출하고, 초의선사나 허백련화백 같은 분들처럼 지역에 거주했지만 세계와 소통하는 그런 사상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교나 고향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세계화 속에서도 지역이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는 말로 Glocalization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Glocalite라고 부릅니다. 우리 동문들이 자기 분야에서 더 큰 발전을 했으면 좋겠고, 재학생들도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모교와 국가를 위해 많은 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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