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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17.12.26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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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창회
제목 : <동문칼럼> 푸른용봉회 윤현석 동문(신문방송학.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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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현 석(신문방송학 90) 광주일보 정치부 부장 

 

나이 먹을수록 고마운 모교, 그리고 푸른용봉회

90학번이니, 전남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제 27년이다. 대학에 입학하며, 그 이후 수년간 교정에 머물렀던 그 푸릇푸릇했던 날들을 지금 모두 제대로 기억해내기는 어려울 듯싶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선배들의 성화에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했던 일, 최루탄가스와 오토바이 헬멧을 쓴 백골단에 쫓겼던 일, 그리고 학보사기자로 일하며 학내 곳곳을 돌아다녔던 일 등이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그 외에도 갖가지 일들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뇌에 저장되면서 또는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될 수도 있어 감히 언급하지 못하겠다.

 

졸업을 하고 곧바로 광주일보에 입사해 지금까지 기자직을 유지하고 있다. 신문방속학과에 진학한 후 학보사 기자를 거쳐 다시 지역일간지 기자를 직업으로 하게 되니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대학을 나와 다시 모교를 찾은 것은 지난 2004년이다. 기자가 공부를 한다는 것이 아직 낯설었던 시기였지만, 당시 1년간 한국언론재단 일본 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때 대학원 진학을 다짐한 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연수 주제는 ‘마치즈쿠리’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마을 만들기, 즉 도시계획(Urban Planning)이었다. 유럽이나 일본의 선진도시에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라 여겼던 도시계획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들의 의지를 도시공간에 반영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러한 추세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해 전공은 도시 및 지역개발학으로 정했다.

 

정확히 12년 동안 다시 대학을 다니며 머리를 싸맨 끝에 지난 2015년 8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17년이라는 시간동안 전남대에 신세를 진 셈이다. 솔직히 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후 상당기간 모교에 그리 크게 고마움을 갖거나 애착이 있지는 않았다.

 

동문회에서 전화가 오거나 주소록 같은 것을 발간한다고 해도 무관심하게 대응했던 것 같다. 그러한 자세가 바뀐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적어도 이 지역에 전남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필자처럼 뒤늦게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지역민이 비교적 저렴한 학비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각성이 있었던 탓이다.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그 때 존경하는 푸른용봉회 회장 박인철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젊은 동문들이 모여 모교를 위해, 또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자는 권유였다. 기꺼이 가입해 지금까지 모임이 있는 날이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참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20년 가까이 도움을 받은 전남대에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40대 중반을 넘어서 정신 차린 후배에게 연락하고, 권유하고, 반갑게 맞아주고, 언제나 먼저 안부 물어주는 박인철 선배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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