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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753
일 자
18.02.28 17: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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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총동창회
제목 : <동문 수필> 박용수 동문 (국문.82) 겨울을 건너는 방법

 겨울을 건너는 방법

 

겨울이 좀체 떠나질 않고 있다. 햇살은 게으름을 피우며 더디게 와서는 서둘러 떠나버리고, 어둠은 성큼성큼 내려왔다가 느릿느릿 떠난다. 바람도 매섭고 눈보라는 옷 속을 파고들어 살을 엔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꽁꽁 세상도 얼어붙고, 덩달아 사람들 마음도 결빙이 될 것이다. 활동도 뜸해지고 의욕도 곤두박질한 수은주처럼 급강하한다.

 

 

  이쯤 되면 방안에만 있기도 뉘가 난다.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창문 앞에 선다. 그리 고 저 설빙을 눈부시게 이고 있는 무등산을 보고 봄을 성급히 불러본다.

 

 사실 겨울은 사람보다 뭍 생명들에게 더 가혹하다. 실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편견 없이 두루 어렵다. 인간은 그나마 저장한 먹을거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당장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짐승들은 어둠과 혹한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숨을 얻을 수 있다.

 

 동장군의 기세가 드세다. 우린 더 가혹한 추위와 마주해야한다. 혹한을 대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추위를 피하는 것, 즉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방어하는 방법이다. 모든 문을 닫고 구들을 침대삼아 안일과 편안과 느긋함에 빠지면 된다. 고흐의 그림, 감자먹는 사람들처럼 또는 동면에 든 곰처럼 시련을 견디는 것이다.

 

맹추와 맞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겨울은 주로 휴식, 웅크림, 준비, 충전과 같은 소극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에 맞서 스케이트도 타고 연도 날리고 겨울 등산이나 여행을 하는 등 추위에 대항하며 적극적으로 추위를 즐기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 음이 절정에 달하기 때문에 서서히 양기가 충전할 것이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이 따뜻하고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지듯 실상 한 겨울 음기가 탱천할 때, 양기가 힘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겨울을 극복의 대상으로 노래했다. 

 

 윤동주 시인도 ‘겨울’, ‘눈 오는 지도’ 등과 같이 겨울을 제목으로 한 시를 통해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봄을 노래했다. 역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겨울을 노래한 시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진짜 고수는 다르다. 그들은 강인한 의식을 간직하고 있어서 삶에 대한 인식 또한 각별하다. 털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두르고 아침 일찍 말바우 시장, 무등 시장, 화순 장터 고샅으로 달려가 보라. 꽁꽁 언 동태 상자를 패대기치다가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들을 삼켜대는 반쯤 잘린 드럼통의 이글거리는 불빛 속에 손을 녹이며 해장국을 넘기는 그들의 목젖에서 천국과 행복이 퍼덕거린다. 깜깜한 새벽, 어둠 속에서 얼음장보다 차가운 철근을 잡고 씨름을 하다가 장작불 속에 이글거리는 돼지고기 한 점을 입에 집어넣고 질겅거리는 너털웃음 속에 생의 감동도 겨울나는 방법도 들어있다. 

 

 그래서 진짜 겨울을 건너는 고수나 도사들은 겨우내 잠이 드는 법이 없다. 흐트러지는 법도 없다. 깨어 있어야 한다. 땅이 풀리면 흙을 박차고 나가야 사는 개구리처럼,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다. 겨우내 땅속에서 깨어 있다가 해동이 되면 껍질을 깨트리고 흙을 뚫고 나가야 하는 도토리처럼, 비록 여린 순일지라도 흙을 뚫지 못하면 썩고 만다. 극복조차 망각하고 몰입하고 사는 삶, 그것이 진짜 겨울을 건너는 법, 내공 있는 사람들의 겨울나기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오오, 눈부신 고립 /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중에서

겨울은 피하거나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초극(超克)하는 삶으로 연결시킬 때, 겨울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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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82학번)

전남일보 신춘문예 아버지의 배코 당선

수필집 :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광주문학상, 광주예술문화상 수상

광주동신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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