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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10.0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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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글쓴이
김영진
제목 : 지금 여기

 

지금 여기

 

김 영 진 전남대학교병원장   

 


데자뷰(Deja vu. 旣視感) - 처음임에도 언젠가 경험한 듯한 느낌.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양지에 앉아있노라면 어렸을 적에, 혹은 꿈에서라도 본 듯한 장면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경정신학적으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이동이나 결합, 전기적 자극의 변화에 따른 기억의 장애라고 하지만, ‘언제였지?’라며 기억을 더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각자 소망하고 이루고 싶은 많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새해 소망이야 부자 되는 것이 가장 흔하겠지만, 새해 계획은 건강과 관련된 것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장대한 포부와 결연한 의지로 다짐했던 새해 계획도 벌써 희미해져 갑니다. 이런 낭패감을 언젠가 경험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너그러운 신이 한 해를, 아니, 한 번의 삶을 더 준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다짐했던 야무진 의지와 각오가 어느새 망각의 상황으로 빛이 바래지기 십상이다.

 
살면서 세 가지가 소중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며, 마지막으로는 내가 활용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때론 간과하지만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서있는 이 곳은 과거의 결실이자 미래의 씨앗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한 시간 한 시간 충실히 살아간다면 향기로운 내일의 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항상 출발점은 ‘지금 여기’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30세 이상 성인이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예방하고 일찍 치료하기 위한 ‘암 검진’이다. 암 검진을 꺼리는 사람들은 조기에 암을 발견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질환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암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검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암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 암은 고혈압, 당뇨처럼 만성질환으로 인식해야 하며, 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조절·관리하는 질환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장암 빈도가 증가하여 50세 이상은 5년에 한 번 정도 대장내시경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검진자의 부담 못지않게 시술자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전에 장세척을 철저히 했어도 대장의 많은 굴곡 때문에 시야확보가 어렵고 내시경이 대장벽에 막혀서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이 때 내시경을 계속 밀어넣기만 하면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내시경을 빼는 것입니다. 내시경을 빼면 시야가 좋아지고 대장이 반듯하게 되어 검사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할까요?

 
얼마 있으면 음력 새해가 시작됩니다. 너그러운 신이 주신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한 해가 보태지는 것이겠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한 해가 줄어드는 것일 겁니다.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욕심도 줄이고 몸집도 줄이며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없이도 잘 될까하는 노파심과 왠지 서운한 감정이 드는 노여움, 그리고 끝까지 소유하려는 노욕을 나이 들면서 버려야 할 세 가지라고 들었습니다. 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항상 새로운 날입니다. 실패한 어제의 기시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지혜를 금년 한달이 지난 오늘에야 되새겨 봅니다.

 

/ 광주매일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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